돌봄과 부재 사이에서
봄은 언제나 희망의 계절로 불리지만,
누군가에게 봄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돌보거나
이미 떠난 이를 조용히 기억하며 버텨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돌봄을 선택하지만
돌봄이 언제나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날에는 책임이었고,
어떤 날에는 의무였으며,
또 어떤 날에는 도망치고 싶었던 굴레이기도 합니다.
돌봄은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보상 없이 반복되는 노동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지쳤다는 감정마저 쉽게 말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다그치며 하루를 넘기곤 합니다.
그런 모순된 시간들을 지나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게 되면
그것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내 삶을 지탱하던 한 부분이 조용히 사라지는 경험이 됩니다.
우리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박은영, 이자용, 허현주 작가의 작업은
돌봄과 상실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곁에 오래 머물러온 감정의 결을
각자의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말이 되지 못한 감정들,
쉽게 정리되지 않는 마음의 상태들이
작업 속에 고요히 놓여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잘 견뎌온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이
서둘러 정리되지 않아도 되는 자리,
잠시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모두가 앞을 향해 걸어가라고 말하는 3월.
봄을 이렇게 시작해도 될까요?
독립기획자, 엘리펀트프리지 대표 이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