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시선
어느 저녁, 거실 소파에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말이 없습니다.
한 사람은 끊임없이 릴스 영상을 넘기고, 다른 한 사람은 새로운 관심사를 찾아 화면을 표류합니다.
몸은 한 공간에 머물고 있지만, 정신은 각자 전혀 다른 가상 세계를 떠돌고 있습니다.
주말의 카페를 가득 채운 연인들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시선이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을 때, 남겨진 다른 사람의 갈 곳 없는 시선은
멍하니 창 밖을 향합니다.
이런 시선의 어긋남은 현대 도시의 가장 흔한 일상적 풍경이 되었습니다.
박현진 작가는 바로 이 낯설고도 익숙한 순간들을 포착했습니다.
그의 사진은 강렬한 초록, 찌르는 듯한 분홍, 시린 느낌의 파란색이 뒤섞여 있고,
화면 전체에는 모래 바람 같은 노이즈가 자욱합니다.
우리가 아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사진의 전통적인 문법을 거부한 이런 표현은 작가 자신이 실레로 경험했던
'광시증(Photopsia)'에서 출발했습니다.
광시증은 눈의 과부하로 인해 빛이 없는데도 눈 앞에서 섬광이 번쩍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밤낮없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디지털 화면에 중독되어,
정작 눈 앞의 진짜 현실과 고유한 색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 왜곡된 빛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인물들은 어딘가 공허해 보입니다.
분명 한 화면 안에 존재하지만, 그들의 눈길은 단 한 번도 서로를 향하지 않습니다.
아름답고도 강렬한 색 뒤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관계의 단절과 존재의 소외가 서늘하게 숨어 있습니다.
작가는 화면 속 어긋난 시선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눈이 과부하되면 세상이 왜곡되어 보이듯, 우리의 관계 역시 그렇게 해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말입니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과, 당신은 정말 함께 있는 걸까요.
독립기획자, 엘리펀트프리지 대표 이정훈
PHOTOPSIA; vertigo 시각 과부하와 관계의 파편화
현기증이 있었다.
순간 짧은 섬광과 함께 주변의 풍경들이 마치 색상이 반전된 것처럼 형광의 색과 더불어 변하는 것을 느꼈다.
실제 외부의 빛이 없음에도 망막과 시각 피질의 과부하로 인해 가끔 눈앞에서 섬광이 터지는 '광시증(Photopsia)'을 겪을 때마다,
나는 우리가 신뢰하는 시각 장치의 취약성을 직면한다.
나에게 이 신체적 오작동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내가 발을 디딘 세계가 통째로 흔들리는 듯한 미학적 현기증(vertigo)의 출발점이다.
마주하는 현실은 늘 불완전하다.
디지털 스크린의 강렬한 블루라이트와 도시의 비대해진 정보 속에서
현대인의 망막은 현실의 고유색을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열화된다.
프레임 위에 펼쳐 놓은 네온 그린, 핫 핑크, 시안 블루 등
왜곡된 보색 대비와 거친 노이즈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사진의 전통적 문법에 대한 나의 거부이다.
나는 외부 세계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대신,
내 지각 시스템 내부에서 일어나는 광학적 잔상(Palinopsia)과 인지적 균열을 시각적 텍스트로 치환하고자 한다.
이 왜곡된 스펙트럼의 중심에서 내가 포착한 인물들은 현대 사회의 관계적 단절을 구조적으로 증명한다.
나의 프레임 안에서 인물들은 동일한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면서도
철저히 개별적인 시선의 좌표를 고수한다.
가장 친밀한 공동체인 가족이나 동반자적 관계조차도 내 카메라 앞에서는
시선의 불일치를 통해 파편화된 개체로 해체된다.
한 인물이 스마트폰이라는 가상의 인터페이스 내부로 시선을 은닉할 때,
그 곁의 다른 인물은 프레임 외부의 허공을 응시하거나 등을 돌린 채 침묵한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타인의 얼굴을 직면하는 물리적 상호작용의 숭고함을 말했으나,
내가 바라본 도시의 타자들은 서로를 관통하는 무심한 잔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들의 시선이 어긋나는 지점에서, 내가 포착한 공간은 다층적인 시간의 레이어로 쪼개진다.
인물들은 현재라는 단일한 시간축에 결속되지 못하고, 내 망막이 미처 방출하지 못한 '지체된 기억'처럼
화면 위에 유령화(Ghosting)되어 잔류한다.
나에게 시선의 불일치는 곧 존재의 소외를 의미한다.
결국 <PHOTOPSIA; vertigo>는 관계의 외형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인지 능력이 어떻게 고립되고 관계가 해체되는지를 추적한 나의 시각적 보고서이다.
나는 화면 속 어긋난 시선들을 통해 묻고 싶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공동체와 도시는 유기적인 실재일까,
아니면 혹 과부하된 우리 개개인의 망막이 만들어낸 단절된 잔상들의 집합은 아닐까.
박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