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음악이 흐르는 밤
음악과 책을 좋아하니 그와 관련된 형상이 등장하는 그림 또한 홀린 듯이 빠지게 됩니다.
모두가 잠든 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던 그 순간으로 나를 데려다 놓으며 그때 느꼈던 감정마저 떠오르게 해주기 떄문입니다.
이번 전시는 제게 그런 영감을 주었던 류민효, 정수진, 제이류의 작품들을 함께 선보입니다.
전시를 기획하며 작가님들께 작업을 하며 읽었던 책과 음악을 공유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작가들이 준 리스트 속의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니 이미지만으로는 느끼지 못했던 어떤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창작자들이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애쓰던 무수한 '이름 없는 시간'을 공유하며 그들의 세계 속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기분입니다.
조용미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자신이 찾던 단어와 정서가 약속이나 한 듯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는 정수진 작가의 말처럼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류민효 작가는 선과 형태로 소리를 그립니다.
<피아노 위에서>는 쇼팽의 발라드와 함께 태어났고, <창문>은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끝부분을 읽다 떠오른 장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브라이언 이노의 <By This River>, 마일스 데이비스의 <So What>_
그가 고른 음악들은 하나 같이 잔잔하고 고요한 세계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세 권의 책을 추천하며 그가 남긴 말-' 이 작품들 속에 깔려 있는 공통된 분위기,
그 잔잔하고도 고요한 세상 속에서 제 자신을 더욱 빤히 바라볼 수 있었다'-은 류민효 작가의 그림 보는 방법을 조용히 알려줍니다.
정수진 작가의 그림 속 시간은 언제나 새벽 2시 이전입니다.
하루가 완전히 지나가기 직전, 바깥의 소음은 잦아들고 생각은 조금 더 깊어지는 시간.
그는 그 고요 속에서 실재와 상상의 경계에 놓인 두 인물을 그립니다.
조성진의 드뷔시 <달빛>을 들으며 작업했다는 그의 말처럼, 그림 안에는 부드럽고 느린 선율이 머물고 있습니다.
제이류 작가는 일상의 경계 마다 숨어있는 특별함을 그립니다.
편지를 쓰는 손, 헤드폰을 끼고 턴테이블 앞에 선 두 사람, 버드나무 아래 홀로 서 있는 남자_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저마다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추천한 책 목록 안에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이 있습니다.
그림 속에 화가가 등장하는 소설들을 모아둔 그 목록을 보며,
저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일과 그림을 읽는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이 한정지어 해석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관람객들이 저마다 자신의 생각대로 느끼고 해석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이해하고 싶어 그의 에세이를 찾아 읽고 그가 즐겨 듣던 재즈를 감상하듯,
때론 그림을 감상하며 작가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전시는 그림만으로는 공유되기 힘들지 모르는 창작자들의 그 감정까지도 이해하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누군가는 말로 표현하지 못해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데, 관람자가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음악과 책의 도움을 받는다면 너무 억지일까요?
류민효 작가가 아니었더라면 접하지 못했을 마쓰이에 마사시의 책 제목처럼,
전시를 준비하며 글을 읽고 음악을 듣던 나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두고두고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독립기획자, 엘리펀트프리지 대표 이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