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도전'에는 박수가 필요없습니다
머스트해즈 X 나나로아
문도 유리창도 없이 낡은 기둥과 벽만 남은 폐허를 한 여성이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한쪽 손으로 자신의 몇 배나 되는 커다란 운동화 한 짝 을 끌고 가는 중입니다.자신이 원하는 세상으로 가려면 저 신발을 신고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하는데 왠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가을 하늘처럼 맑은 하늘과 대비되는 먹구름은 그녀의 머리 위에서 굵은 눈물 방울 같은 비를 내리고 있습니다. 비는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과 슬픔 같습니다.
벨기에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나에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라고 말하며 작품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부수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가 그랬듯, 나나로아 작가도 우리 주변에 있는 대상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그것과는 다른 요소들을 작품 안에 배치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시선을 한 화면에 담아 원근법을 깨거나 그림자의 방향을 바꾸는 것 같은 자유로움으로 만들어낸, 낯설지만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장면은 우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일상의 장면들을 거칠게 조합해 만든 이미지들은 작가의 일기이자 에세이입니다. 외로움, 무기력, 슬픔, 질투,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던 작가가 이제는 지난 1년간 옥천 생활에서 느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익숙함과 엉뚱함이 공존하는 나나로아 작가의 디자털 작업은 MZ세대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대형 브랜드들과 쏟아져 나오는 신생 브랜드들 사이에서 머스트해즈(Musthaz)가 첫 걸음을 내딛고 예술가를 응원하겠다고 나선 건 묻어두었던 꿈을 꺼내는 일입니다. 그 첫 걸음을 미술 비전공자이지만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나나로아 작가와 함께 하는 건 콜라보 전시 이상의 '도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은 자꾸 대단한 걸 이루기 위해 도전하라고 합니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 큰 꿈을 펼치라고 합니다.
어느 예능 방송에서 한 청년이 '제 꿈은 시골에서 고양이와 함께 느긋하게 사는 것' 이라고 말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나로아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마음 속에 오래도록 묻어둔 일을 꺼내는 일이 도전이라고 말합니다.
대단하지 않아도, 박수 받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용기내는 당신의 행동이 곧 도전입니다.
글. 독립기획자 & 엘리펀트프리지 대표 이정훈
작가노트(Artist’s Note)
움직임의 시작에는 대부분 신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신발을 떠올리면 꼭 어디론가 가야할 것만 같았습니다. '이 신발을 신고 어디를 갈까?'를 고민하다 문득 어제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어제는 편지를 꺼내 읽었습니다. 삐뚤삐뚤한 글씨 때문에 한 문장을 두 번씩 봐야했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6개월 넘게 읽지 않았어요. 편지의 마지막 즈음엔 '미안하다' 는 문장이 있었는데, 못 본 척 바로 다음 문장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래도 나름 용기가 생겨 읽은 편지였는데, 제대로 읽지도 않고 편지를 다시 상자 속에 넣어버렸습니다.
편지를 꺼내고 읽는 과정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듯 두렵고 슬펐습니다. 사람들은 '도전'을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영화에 나올 법한, 세상을 바꿀 만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을 그런 도전이요. 하지만 저는 마음 속에 오래도록 묻어둔 일을 다시 꺼내는 행동이라면, 그것이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제가 편지를 꺼내 읽은 것처럼요.
다시 스스로에게 '이 신발을 신고 어디를 갈까?' 라는 질문을 해보자면, 저는 '편지에 답장을 하러 갈 것' 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 그 곳이 어디든 당신이 용기내는 그 모든 일이 도전입니다. 당장은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하고, 화가 나고, 무서워 긴장이 되더라도, 당신의 도전은 결국 당신의 편이라 확신해요. 이 작품들이 도전을 앞 둔 당신의 근처에서 힘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여행중>
마음에 묻어둔 아픔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불쑥 찾아옵니다. 나는 여행을 떠나, 어느 민박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리움과 아픈 기억이 떠오릅니다. 나를 기다리며 외로이 남겨진 사람들의 의자가 보입니다. 지나가는 고양이마저 슬프게 느껴집니다. 여행까지 따라온 슬픈 기억들을 보며, 나는 이 기억들과 마주하기로 다짐합니다.
<마음속>
나는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방은 마음속입니다. 그래서 나는 밖이 아닌 방안을 향해 몸을 돌리고, 신발끈을 묶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버리고 싶은 기억들과 간직하고 싶은 추억들이 있습니다. 벽에는 늘 원해오던 꿈이 붙어있습니다.
<다이빙>
짐을 잔뜩 실은 트럭을 타고 할머니집을 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린 마음에서 였을까요, 덜컹거리고 물이 새는 트럭을 타면서도, 나는 우리 가족이 특별한 차를 타고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행복했던 겁니다. 우리가 어떤 꿈을 꾸던 그 꿈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들이 꼭 함께했으면 한다는 마음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비누신발>
걸을수록 낡고 해지는 신발은 씻을수록 사라져가는 비누와 닮았습니다.
'비누신발'은 어떤 신발을 신던, 결국 남는 건 신발이 아닌 '어디로 향하는가' 하는 방향성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신발>
신발을 보며 다녔던 곳들을 떠올려봅니다. 나는 바다와 산, 나무와 흙이 있는 곳들을 주로 다녔습니다. 어느새 신발은 낡아졌지만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가닥을 잡았습니다.
<내가 있던 곳으로>
미워하고 아파하는 마음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좋아하는 신발을 데리고 원하던 곳으로 걸어갑니다. 그곳은 오래 전에 살았던, 익숙하고 편안한 곳입니다.
<꿈>
함께하고 싶은 사람의 옆에 있을 수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고 안아줄 수 있는 것. 쉬워보이지만 꽤나 어려운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작품입니다.
나나로아
오시는 길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97길 20-4, 엘리펀트프리지
전시 공간 주변 주차가 불가합니다.
인근 공영 주차장(봉은사 및 코엑스몰)주차장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2번 출구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10am - 5pm
매주 토, 일요일 및 공휴일 휴무
Weekend and Holiday 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