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리acrylic on canvas, pen, 22x27.3cm, 2011
소리모양들 : 박주영 드로잉 전
Park Ju Young 박주영
세차게 내리는 비가 우산을 시끄럽게 때리는 소리를 듣다 들어간 일요일 오전의 전시장은 고요했습니다.
작품을 감상하며 천천히 걷다가 한 드로잉 작품 앞에 멈춰 섰습니다.
화면 위를 자유롭게 넘실대는 가느다란 여러 겹의 선과 군데군데 찍힌 부드러운 점들이 신기하게도 내게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저 깊은 바닷속으로부터 들려오는 합창 같기도, 우리가 닿지 못할 천상에서 들려오는 현악4중주와 소프라노의 협연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그림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그녀의 영혼에서 들려오는 음악임을 알게 된 후, 나는 박주영 작가의 드로잉에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날 전시장을 홀로 지키던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녀가 듣는 데에 불편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5살 때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통해 듣기는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제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어찌 보면 우산 없이 세찬 비를 맞아야 하는 일과도 비슷하니까요.
박주영 작가의 드로잉은 소리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소리들이 발화되어 사라지기까지 그 소리들을 시각화합니다. 박주영 작가는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해 대화할 때 상대방의 입모양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그때 작가에게 남겨지는 인상이 있습니다. 영어나 불어를 하는 외국인들을 만나 대화하면 왈츠의 이미지를, 중국인들은 성난 이미지, 한국인들은 교과서적인 이미지를 느낍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소리의 모양들을 궁금해하게 되고 그것들을 시각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주영 작가는 소리와 애증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그녀의 이전 작업부터 현재까지 그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소리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 '미움'보다는 '사랑'의 비중이 점점 커져간다고 느낍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소리,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목소리들을 풀어냈습니다. 우산 없이 세찬 비를 맞으면서도 박주영 작가는 세상에서 만나는 소리를 다 아름답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문득 작가님 앞에선 예쁜 말들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 독립기획자& 엘리펀트프리지 대표 이정훈
작가 노트 (Artist's Note)
진주 알 같이 반짝이는 떨림 음, 빛 같은 속도로 내는 ㅅ옷, 붉게 진동하는 ㅁ음, 바람소리 ㅍ읖, 휘어서 내는 모음들.
목소리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폐부의 끝에서 수줍게 드러내는 목소리의 방향, 밀도, 색이 외부 공기를 만나며 휘발되는 시점까지 그 정체가 궁금하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목소리를 내어 관계를 맺어간다.
발화자에게서 뿐 아니라, 외부에서 마찰로 빚어낸 일상풍경에서 목격된다.
냉장고 문 닫는 소리, 산불을 알리는 TV 아나운서 목소리, 창문 너머에서 나는 새소리도 들린다.
동시에 저 너머에 일어나고 있는 재난으로 인한 목소리를 미디어를 통해 피부로 느낀다. 생기 발랄한 생명에서 나는 기쁜 얼굴, 슬픈 표정, 죽어가는 피부 위에 포효하는 목소리들을 은연중에 만나며 살아간다.
목소리는, 모든 생명의 폐부의 끝에서 나와서 메아리가 되어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촛불같이 꺼져가는 목소리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직선적인 형태의 자음과 곡선 형태의 모음, 비언어의 표정들이 발화자들의 가슴 속 밑에서 식도의 마찰을 빚어 올라오는 소리가 혀의 늘림으로 통과하여 공기를 만나 해방하는 걸까?
시간은 목소리를 잡지 않는다. 발화할 때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소리가 어떻게 시각화 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시간의 피부 속에 선명하게 남겨진 목소리와 꺼져간 목소리를 선을 긋고 아크릴 물감이나 수채물감을 붓으로 음표를 찍으며 목소리의 색을 낸다.
목소리의 다양한 형태들을 균형적으로 배치한 화면 위에 물감으로 밝고 어둠의 색채로 소리를 깔았다. 그 다음 농도의 양으로 볼륨을 조절하고 터치의 방향으로 질감을 낸다.
종이나 캔버스에 낸 펜의 반복된 선과 붓질은 속으로 읊으며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자연의 형태들을 포착하여 재현한다. 변화하는 사계절, 바다, 도시,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들 속에서 살아있는 목소리의 거대한 뉘앙스들이다.
아무래도 소리를 내는 곳의 방향을 따라가는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겠다. 전하지 못해서 애증으로 남았던 단어 한 글자를 거꾸로 매달아 그린다. 그리고, 희망도 불안도 없는 사라진 목소리에게 색의 농도를 상상하며 손으로 허공을 향해 휘젓는다.
박주영
오시는 길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97길 20-4, 엘리펀트프리지
전시 공간 주변 주차가 불가합니다.
인근 공영 주차장(봉은사 및 코엑스몰)주차장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2번 출구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10am - 5pm
매주 토, 일요일 및 공휴일 휴무
Weekend and Holiday OFF